내 친구들 중에는 고려대 근처에서 살고 있는 지인이 몇 있다. 언젠가부터 '만두방' 에 대한 이야기가 좀 있었는데.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고 기회가 없다가, 드디어 기회가 생겨서 만두방이라는 곳을 가보기로 했다.

 

나는 그냥, 사실 '다른 이름이 있는데' 부르기 편하게 만두방이라고 하는 줄 알고 가봤는데.

 

어. 진짜 이름이 만두방 이더라고.. -_-;

언제적 건물이지?... 굉장히 저렴하게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포스를 마구마구 풍기는 간판과 건물 상태다.

 

 

만두가 2000원인데. 10개가 나온다.

그야말로 양으로 미는 전형적인 스타일. 난 이런 스타일이 참 좋다. 그냥 양 많은 게 최고다.

질 좋은 재료로 비싸게 먹든, 질 조금 별로인 재료로 싸고 많이 먹든. 일단 최종 목적지는 뱃속이잖아.

 

 

네명이서 갔는데. 정말 배 터지게 만두만 먹었다. 돈도 별로 안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거 좋아. 싸고 양 많은 거 참 좋아.

질은 기대하지 말자.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집 앞이나 시장에서 먹는 만두와 딱히 다른 점은 없다.

 

 

라면도. 난 왜 이렇게 집에서 맛깔나게 라면을 끓이지 못하는가. 이것도 2000원.

 

 

위치는 대충 이정도.

 

종합하자면. 그냥 싼 맛에 많이 먹고 싶은 사람들에겐 참 좋은 곳.

다만, 테이블이 4개밖에 없어서 대기순번이 있을 가능성이 있고, 주인 아저씨가 딱히 별 말을 안 하기 때문에 친절한 서비스 뭐 이런 거 기대하지 않는다면.

가격대비는 최상인 듯 하다.

 

발단은.

여자친구의 캘린더에 '창경궁 야간 개장' 이라는 스케줄이 있었다. 이게 뭔가 하고 물어봤더니. 꼭 가야 한다고 그러더라.

그대로 두면 아마 일에 치여서 못 갈 듯 해 보여서, 내가 예매를 하기로 했는데. 이미 매진이더라.

좌절하고 있는데, 뒤 이어 경복궁 야간개장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걸 대신 보기로 했다.

이것도 티켓팅이 굉장히 어려웠는데, 엄청난 새로 고침 노가다 끝에 마지막 날 표 2개를 구할 수 있었다. 다행이야.

 

 

사실 역으로 바로 통해서 갔기 때문에, 이 문은 제일 나중에, 나올 때 봤는데. 그래도 일단 관문이어서 맨 처음에.

야간개장이다 보니 불이 굉장히 밝아서. 사진 찍는 능력이 제로임에도 불구하고 사진 퀄리티가 심하게 나쁜 정도는 아니라 다행.

여하튼, 경복궁은 사적 제 117호로 지정이 되어있으며, 조선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제일 처음 지었던 궁궐이라고 한다.

 

 

표는 이렇게 생겼다. 아무리 밤이라도 플래시는 터트리면 안되겠더라.

그냥 밤은 사진 찍으면 안 되는 시간인가보다.

 

 

근정전이다. 근정전은 조선의 대표적인 왕실의 상징 건물이고, 역대 왕의 즉위식이 거행된 곳이다.

이게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흥선대원군 때 다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굉장히 밝아서, 여기서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대충 찍어도 정말 괜찮게 찍힌다. 프로 사진사들은 꽤 엄청난 사진도 나올 것 같다.

아이폰 4 가지고도 그럭저럭 잘 나와서 놀랬다.

 

 

근정전 내부. 당연히 들어갈 수는 없지만 이 정도에서 촬영은 가능했다.

거의 대부분 이 곳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더라. 그래서 여자친구와 나는 이곳을 '셀카 존' 이라고 불렀다. 물론. 우리도 셀카를 찍었다.

 

 

근정전을 위에서 올려다본 모습. 참 정교하게 잘 만들었다.

색감도 굉장히 예쁘게 잘 나왔다.

 

 

여기는 그냥 나가는 곳인 것 같다.

 

 

경회루. 아마 경복궁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지 않을까. 과거에도 연회를 주로 이 곳에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경회루는 밤 보다는 낮에 가서 찍는 편이 더 좋았다고 본다. 이 이상 접근할 수 없는 건물이기도 하고.

 

 

수정전. (Before Editing)

집현전이다. 이곳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재건하면서 수정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임진왜란으로 인해 다시 지은 것들이 꽤 많네.

여기서 뭔가 공연을 하는 듯 했는데, 딱히 관심은 없었으니 패스. 가까이에서 촬영했다면 조금 더 좋았을 텐데 공연한다고 줄을 둘러놓아서 가까이 가진 못했다.

 

전체적으로는 매우 가 볼만한 곳. 티켓 값 대비해서는 매우 괜찮다. 이게 매년 한다고 하는데, 다음에는 창경궁을 꼭 한번 가봐야겠다.

  • FrozenRay911 2013.12.03 23:16 신고

    아 야간개방이라고 무제한이 아니라 인원 수 한정인가봅니다? 좋은 정책이네요.

    • Shorty. Kei. 2013.12.04 09:39 신고

      ㅇㅇ 인원 수 한정이야. 그래서 나름 쾌적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음~ 그거 없었으면 아마 쓰러질 정도로 많았겠지.

  • Ryunan9903 2013.12.24 00:32 신고

    생각해보니 서울 근처에 살면서도 경복궁은 중앙청 철거되기 전에 한 번 가보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네요.

    • Shorty. Kei. 2014.01.08 10:51 신고

      나도 가본 기억은 거의 없네 생각해보니까. ㅋ 이것도 여친이 제안하지 않았으면 기회가 없었을지도 몰랐지.

예정에는 없었는데. 성수역에서 왕십리 역까지 걸어가다가 한양대학교를 지나쳤다.

왕십리 역에 와본 적은 참 많은데, 막상 한양대학교 정문을 본 적은 없었고. 마침 날씨도 좋아서 몇 장 찍었다.

 

 

나는 입시 때 뭐 했더라.

내가 입학했던 대학교는 충남 언저리에, 굉장히 외진 곳이라 이렇게 붐비진 않았던 것 같다.

정말 조용하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하긴, 13년이나 지나버린 세월을 기억하는 것은 참 힘들다.

 

 

공부만 하면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라는 대전제는 참 좋은 것 같다. 그거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것이 없거든.

내가 딱히 고등학교, 대학교 때 공부를 했다 해도 여기서 살림이 더 나아 졌겠나 생각되긴 하지만. 분명 대학교 때의 활동은 충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후회 없이 들 하길. 그저 놀고 먹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이제는 조금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 비싼 학비를 대주시는 부모님에게 잘해드리고.

 

 

참 좋은 날씨였다.

원래는 투덱 더블 10단에 도전하려고 했지만, 가는 겜장의 2p 측 5번 키가 박히는 바람에..

빠르게 포기하고 팝픈뮤직을 몇 판 해봤습니다. 언젠가는 꼭 더블 10단을 따고 싶어요.

 

 

이게 이번에 새로 추가된 '치쿠와파와다요' 라는 곡인 듯 합니다. 보통 치쿠파 라고 불리는 모양인데..

선곡은 '메우메우 펫탄탄' -> '사랑과 킹콩' 을 플레이 해야 그 다음 판에 나오는 모양 이예요.

최근에 팝픈을 좀 하고 있는 입장에서, 47렙 치고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르케' 보다는 할 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비타 노래를 딱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계속 연습을 할 생각은 나지 않아요.

 

 

아공간 재즈. Ergosphere.

48렙을 한 개 더 깼습니다. 이런 macuilxochitl 스러운 피아노 곡을 참 좋아해서, 클리어 해보고 싶었는데 다행입니다.

노트 구성 상 후반에 회복할 수 있는 구간이 있는 느낌이라, 발악하며 플레이 했습니다.

계단 노트를 평소에 참 좋아하는 편인데, 팝픈 계단에 익숙해지려면 노력 꽤 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48렙인 나이트메어 캐러셀입니다. 이 곡은 팝픈을 열심히 하기 전에는 항상 하이퍼 난이도로만 해봤는데,

사실 그 무렵 난이도가 42였기 때문에 딱히 제가 할 수 있는 곡은 아닌 것 같다.. 라는 느낌에서 시도를 하지 않았었어요.

하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할만하게 나와서, 48렙 세 번째 클리어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곡 이예요. 팝픈 뮤직 13의 토모스케의 '카니발'의 어두운 버전이라고 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 6년간 일했던, 나에게는 절대 올 것 같지 않았던 기회(일지 어쩔지 모르겠지만)를 잡아 전직을 확정했다.

   

세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아는 형에게로부터 제안이 왔다. 그때는 바빴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굳이 여기를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딱히 그만 두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네 번째, 다섯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목전에 든 생각은 이전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받은 프로젝트는 '늘 하던 것' 이었다. '더 늦으면 결국 이런 것으로 한계가 그어지겠구나.' 라는 조바심이 느껴졌다.

일단 염두에 두고 아는 형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는 본격적인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최종 결심의 결정적인 역할은, 옮기려고 하는 곳에서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껴서였다.

형에게도 고맙고, 김 차장님에게도 고맙고, 그 곳의 팀장님에게도 매우 고마웠다.

이 분들이 나의 부탁을 지켜주기 위해서 정말 많이 노력하셨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더 이상 고민의 여지는 없었다.

여기까지 해주셨는데, 이제 내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돈이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일하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단지 있는 것이라고는 개발 경력 6년일 뿐 인데…

이력서에 적었던 그런 보안적인 지식은, 그냥 개발하다 보면 알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것인데도 그렇게 생각해주셨다 는 것은.

이제 나는 '보답할 길'밖에 남아있지 않다라는 것. '무조건 악착같이 매달려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것만 내 머리 속에 남겨주셨다.

   

사실 많이 아쉬운 것도 많다. 거의 1달간을, 변화냐 안정이냐를 두고 고민했고 결국 변화를 선택했기 때문에,

안정이라는 '탈락'된 가치에 미련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그냥 가만히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문제 없는 회사 분위기였던 데다가

이미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을 했기 때문에, 딱히 나를 터치할 사람도 없고 편했기 때문에.

하지만, 이 이상 더 늦고 싶지는 않았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6년간의 기본기로, 세상에 당당해지겠습니다.